#. 모처럼만에 게으름을 피우고 싶은 오후.
폭풍같은 한 달이 지났다. 정신없이 달려가던 읽은 이제 어느정도 마무리.
새벽별과 함께 출퇴근.. 어떤날은 양복조차 갈아입지 않은 채 파김치가 되어
내가 어찌하여 옷조차 갈아입지 못하고 잠이 들었는지 모르던 날도 있었다.
캠퍼스, 사대 뒤 넓은 풀밭이 떠오른다. 드라마 속 한 장면처럼 맑은 바람이 부는 날이면
곧잘 그곳을 찾곤 했다. 책 한권을 낭만삼아 향긋한 바람에 몸과 마음을 모두 맡기고 있으면
이유 없이 마냥 행복했다. 그곳이 아련히 떠오른다. 누워 한 잠만 자면 좋겠건만-
회사 일이라는게 그렇듯이 일을 해내는만큼 내 영혼이 소모되는 것이 안타깝다. 소모되는
영혼만큼 더 인정받겠지. 그렇지만, 어쩐지 더더욱 허기지는 이 기분은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서점에 가본지가 언제인지...
#. 어렸을 적, 서점은 내 놀이터였다. 초등학생 시절(당시는 호칭이 국민학생이었다.) 하교 후 친구들과
구슬치기, 딱지놀이, 공차기 등등 소소한 놀이거리가 없는 날에는 어김없이 시내 서점으로 향하곤 했다.
지금은 서점마다 손님들이 편히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되어 있지만 당시에는 그러한 공간이
있지 않았다.
형편이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는 책을 사는데 만큼은 아낌없지 지갑을 꺼내셨다.
"다른 것은 빌려서 쓰더라도 책 만큼은 빌리지 말아라. 꼭 사서 한 번 읽고 버려두지 말고 읽고 또
읽어두어라. 두고두고 여러번 읽어야 비로소 네 지식이 된다."
이런 아버지 덕에 원없이 책을 샀고 또 읽을 수 있었다. 이사에 골칫거리가 될 만큼 책장이 늘어갔지만
부모님은 단 한 번도 책을 버리지 않으셨다. 내 영혼은 그렇게 조금씩 살찌워졌다.
#. 쉽지 않았던 형편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의 배려 덕에 비교적 순탄한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었다.
해가 지는줄도 모르고 공을 차다가 수차례 교복 무릎 언저리를 찢어 먹어 어머니께 남들은 이삼년 입는
교복바지를 해마다 사야 한다고 잔소리를 듣기도 했고, 컴퓨터를 들여놓고 나서는 밤새도록 오락을 하다가
들키면 다음날 어김없이 키보드가 사라져 있기도 했다. 0교시가 아니라 -2교시쯤은 될법한 등교시간과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지금 생각하면 실소가 나올법한 하교 인사를 하고는 잠만 자고 다시 학교인
고3 시절도 묵묵히 잘 보냈다.
오후 무렵의 교실, 주말도, 심지어는 명절조차도 없는 수험생활에 지친 아이들이 모두 잠든 교실
자꾸만 밀려 내려오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고 법정스님의 수필을 읽었다. 창 밖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 바람이 불어 커튼이 살짝 날리면. 살짝 미소가 지어졌다.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해야지'
#. 원하던 대학에 합격을 했고(비록 원하던 전공은 아니었으나) 대학생이 되었다. 선배들을 따라서 데모를
나간 적도 있었다. '사수대'를 뛰라는 선배의 권유도 있었으나 겁이 나서 차마 그것까지 하지는 못했다.
종로 한복판에서 경찰들과 밀고 당기는 씨름을 하다가 골목길 곳곳에서 진압봉을 든 경찰들이 뛰어나오면
짝지어준 여선배의 손을 잡고 정신없이 내달리다 어느 빌딩의 화장실에 숨기도 했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다가 어느 날 선배에게 "저는 이런 일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게 선배를 등지고는
다시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왔다.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매우 열심히 했던 것도 아니었다. 단지 선배들이
좋아서, 그 순수한 모습이 좋아서 쫓아다녔던 것이고 그 순수함이 어느정도 빛이 바래자 좀 더
냉정해졌을 뿐이었다. 운동권이란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한 젊은 시절의 '객기'였던 셈이다.
#. 때가 되어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생이 되었다. 개인사업을 하시던 아버지는 내가 공무원이나 군인이
되었으면 하셨지만 그러한 의사를 적극적으로 피력하셨던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는 내가 무엇을 하던
그저 묵묵히 바라보셨다. 중간에 한 해 휴학을 한 것 때문에 동기들은 대부분 먼저 졸업을 했다.
일부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고 대부분의 동기들은 중,고등학교의 선생님이 되었다. 애초부터
선생님에는 관심이 없었기에 취업준비를 시작했고 손가락안에 꼽을 만한 규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기업이란 범주 안에 들어간다는 회사에 들어왔다. 내가 원하는 부서에 배치해 주었고
열심히 일했다. 사실 내게 있어서 무기란 '성실함'외에 다른 것이 없기도 했다.
#. 몇 번의 이별을 겪었고, 아픈만큼 어느정도는 성숙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사랑이란 것은
나에게 여전히 현재진행형의 숙제이다. 주면 주는만큼, 느끼면 느끼는만큼 커져갔고 어느 순간
그것이 뻥 터져버리는 날에는 죽을만큼 아파했다. 틀린 문제는 열심히 공부해두면
다음에는 좀처럼 틀리지 않을 수 있었지만 사랑은 그렇지 않았다. 연인 사이의 미묘한 감정의
변화라는 것은 수학공식처럼 풀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더더욱
어렵게 느껴졌다.
#. 활 시위는 당겨졌다. 내일 결과가 잘 나와주면 회사 내에서 가장 짧은 경력으로 매출을 올리는 것이다.
비록 선배들이 하고 있는 몇천억짜리 프로젝트에 비하면 다소 작지만 입사 3년차에 이런 일 하는 것은
내가 처음이라고 다들 기대가 크다. '잘'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지만 '열심히' 할 자신은 있다.
최종결재를 받았고, 제출서류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점검했다. 되든, 되지 않든 이제 활은 시위를
떠났으니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 나 정말로 행복한가.
다른 생각을 좀처럼 할 수 없게 만드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어딘가 모르게 느껴지는 이 허전함.
능력을 인정받는 것. 회사 내에서 그것 만큼 좋은 일도 없겠지만 결국은 나 역시도 큰 조직의
한 부품일 따름이다.
오히려 내가 바라는 것은 오늘도 수고 많았노라고 머리 쓰다듬으며 웃어줄 수 있는 사람.
엊그제 만난 친구들 이야기, 얼마전 읽은 재미있는 신간소설 스토리,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특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특별한' 사람.
그런 사람과 함께라면 사실 인생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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