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서로가 살아오며 형성된 "가장 깊은 곳의 감수성"이 다를 뿐이라고 난 생각한다.
#1. 금요일에는 항상 그렇듯이 부어라 마셔라,
집으로 돌아오는 정신만 빼곤 술집에 다 털어버리고 온다.
어제도 그런 날중에 하나였다.
토요일을 넘어가는 새벽 4시경,
택시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고 있던 길에 구청 쓰레기 청소차가 지나갔다.
트럭 후미의 봉투 투입구가 윙윙 거리며 회전을 하고 있었고,늙어 주름이 많던 청소부는 트럭 후미의 좁은 받침에 의지한채 차를 타고 있었고,
머리칼 검은, 갓 서른 되어 보이는 한 청소부는 뛰어다니면서 쓰레기 봉투를 집어 투입구에 던져넣고 있었다.
그리고 가끔 쓰레기 봉투가 많이 모인 곳에서는 늙은 청소부도 "탕탕탕"차를 세워
함께 봉투를 집어 트럭에 던져 넣었다.
영등포구청 소속의 기능직 10급 공무원.
월 기본급 828,100원. 야근 수당, 위험 수당, 가족 수당 등을 합쳐 150만원 가량 수령.
(이 돈도 써보면 꽤 큰돈이다.)
갑자기 어젯 밤에 먹은 1인분에 32,000원하던 소고기와 밤새 얻어 마신 삼십하고도 몇만원짜리 발렌타인과 몇천원짜리의 무수한 맥주병들이 생각나며 괜시리 안도감과 함께 억울함이 밀려왔다.
많이 취했었나 보다. 그리고 갑자기 아버지 생각이 났었나 보다.
집 앞 작은 의자에 앉아서 사람 지나다니지 않는 새벽의 밤에 소리내어 울었다.
#2. 우리 아버지도 기능직 9급 공무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다.산업재해가 나도 산재처리가 되지 않던 70년대, 사고가 나면 무조건 사망사고였던 현장.그곳에서 지금 내 나이의 아버지는 일을 시작하신거다.
분야나 인원배정 따라 다르지만 기능직 10급으로 시작하면 30년이 지나, 겨우 7~8급으로 끝이 난다.
내가 젊은 청소부를 마주했을때 지난 밤의 비싼 술을 상기하며 안도감과 함께,
뭔가 모를 억울함이 밀려온 것은 결국 가난에 대한 기억 때문이었다.
내가 살았던 동네는에서 "부자"라고 하는 사람은 "전세나 월세"가 아닌 "자기 집"이 있는 사람이었다. 방 3칸 있는 집이 가장 부자였다. 시장통의 5000원짜리 어설픈 만화주인공 그림의 신발이 아니라, 프로스펙스 매장에서 프로스펙스 운동화를 프로스펙스 스럽게 신는 사람이 부자였다.
연탄가스는 가끔 먹어줘야 하는 것이었고, 당연히 연탄가스 마신날 아침에도 학교는 가야 하는 것으로 알았다. 피아노 학원이라는 곳이 있는지는 고등학교 가서 알았고, 상고가면 먹고 사는건 어렵지 않다더라는 아버지의 말씀대로 초등학교 저학년때는 주산학원에 다닌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에 3학년때쯤 아버지의 교통 수단이 자전거에서 citi100 오토바이로 바뀌어서 신나게 타고다닌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우습지만, 쇠락하가던 지방의 중소도시 90년대가 그랬다.
#3.그래도 돈이 많지 않은게 싫었던 적은 있었지만, 가난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리고 그것 것 때문에 억울했던 어린 기억은 없었다.
그 젊은 청소부도 3끼 밥을 먹을 것이고, 춥지 않은 집이 있을 것이다.나보다 더 행복하게 토끼 같은 3살짜리 아이와, 미소가 맑은 아내가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가끔은 삽겹살에 소주 한잔 먹을 것이고, 버스나 전철 막차가 끝나고 나면 손을 내밀어 택시를 잡을 것이다.
그리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기뻐했을 것이다.
쇼윈도 속의 멋진 정장을 보면서 가끔 현실을 탓할지 모르지만,토끼같은 이쁜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고 하는데, 학원만 보내주고,집에 피아노를 못사주어 미안해할지 모르지만 꽤 괜찮은 삶일 꺼라 생각한다.
"가난해서 힘드시죠?" 라고 물을 수도 있지만
난 사람들의 생명력을 믿는 편이기 때문에
"삶은 꽤 괜찮은 것이죠?" 라고 묻고 싶다.
#4. 절대적 빈곤을 벗어난 사회이다.
굶어서 배고픈 아이들은 있어도 굶어서 죽는 아이들은 없다.
육체적인 생존은 보장받았지만 우리에게 사회적인 생존은 얼마마큼 보장되고 있을까?
가난해도 멋지게 시를 써서 결국 나중에는 돈을 많이 벌었다던 이름난 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너무나 시를 좋아해서 술만 마시면 내가 쓴 시를 읽어보라던 옛 친구가 결국은 가난과 동생 대학학비 때문에 9급 공무원 시험준비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렇고 그런 찌질한 이야기1, 이야기2, 이야기3.....
체육복 자율화 투표에서 비싼 체육복 살 길이 없어서,
조용히 "학교 체육복 유지"에 한표를 보내던 중학교 학생.
자신이 가난하다는 소득증명서를 제출하기 싫어서 밥을 굶겠다고 결심한 초등학교 5학년 아이.
새벽에 배가 아픈데, 아버지 어머니 맞벌이 한다고 잠자는거 깨우기 미안해 참다가 맹장이 터져버린 초등학교 3학년 한 남자 아이.
취직이 안되고 집이 망해서 좋아하던 최지훈을 버렸지만 그래도 결국 스스로 당당한 위치를 차지한 황정음은 꽤 성공적인 케이스이다.
가난 하다는 이유 때문에, 같은 또래가 같은 꿈을 꾸지 못하는 사회.
난 그런 사회에 분노한다.
#5. 예전에 말이 잘통하다고 느꼈던 친하던 친구의
"우리 아버지는 연세대 나와서 서울대에 컴플렉스가 많아. 그런데 너희 아버지는 대학 어디 나오셨어?"
라는 질문에, 이런 가난에 대한 기억은 어떤 개인에게 분노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대학을 나온 어른들이 대부분인 친구의 환경과,
대학을 나온 사람은 2살 많던 형이 처음이었던 집안의 차이는
이제 갓 스물 넘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래의 단절들에 대해서 우리는 같은 사회에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답답함이 들었다.
누군가가 그냥 흘려보낸 잉여가 또 누군가에게는 절절한 가슴 속 한이 된다는 사실.
누군가의 끈질길 생명력들이 누군가에게는 찌질한 발악처럼 보여 짜증을 유발한다는 사실.
난 더 이상 가난하지도, 가난때문에 불행하지도 않다. 하지만 이런 단절감들에 분노하며, 슬퍼할 수 밖에 없다.
누군가는 꿈을 꾸지 못할것이라는.그리고 서로가 나누지 못할것이라는.
내 친구는 평생 그 젊은 청소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6. 난 운이 좋은 편이라서, 스스로 원하는 것을 여전히 욕심내며 살고있다.
하지만 지하킥 마지막 편의 신세경의 말처럼,
"내가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가면 또 누군가는 사다리 밑에 있겠구나."가 문제이다.
최장집 교수의 말대로 우리는 권위의 시대를 지나 진정한 자본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출처] http://www.snulife.com/?mid=love&am ··· type%3Dv





당신의 의견을 작성해 주세요.